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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일 프롤로그

내가 영과일을 만든 이유는 크게 3가지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1. O.T. 때 동기들의 불평불만

대학에 입학이 결정되고, 선배와 동기 간 친해질 수 있는 자리인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다. 주최측에서 준비한 행사 중간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 동기들과 얘기할 시간이 있었다. 당시 대화에서 "에리카보다 높은 대학에 지원했으나 실패해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는 내용이 기억에 박혔다. 내가 느낀 이 말의 속뜻은 "나는 사실 더 잘난 사람인데 아쉽게도 에리카에 왔다"와 "에리카 수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였다. 뭔가 대학 진학에 있어서 만족스럽지 못한 선택을 했고, 떠밀려서 오게 된 학교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 당시 나는.. 매우 호전적이었고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어서 불평만하고 패배주의에 빠진 동기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2. 특정 학회의 폐쇠적이고 불친절한 문화

14년도 1학기에 들어간 학회에서는 다양한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중 관심 있는 스터디에 참가하여 세미나를 들었는데, 그 당시 내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로 진행되어 따라가기 힘들었다. 스터디에 참석한 초심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재와 달리 14년도에는 기업에서 진행하는 대외활동들이 많았다. 하지만 대외활동들이 정리된 플랫폼은 없어서 정보들은 SNS에 흩어져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배들은 자기네들끼리 정보 공유를 하는 모습에.. 그 당시 화가 많았던 나는 열이 받았다. 좋은거 다 같이 나누면 안되나..라고 생각했다.

3. 대외 활동에서 알게 된 타학교 컴퓨터공학과 상황

14년도 여름방학게 삼성 소프트웨어 챌린지 캠프(SSCC)에 선발되어 다른 학교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당시 우리 학과에 ICPC 준비 동아리가 없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고 있어서, 같은 조 사람들한테 너네 학교에는 ICPC 준비 동아리가 있는지 물어보고 다녔다. SSCC에 참가한 대다수에 학교의 컴퓨터공학과에서는 ICPC 준비 동아리가 존재했었다. 우리 학교만 없다는 사실이 개탄스러웠다.


입학 후 한 학기 동안 느낀 불만을 바탕으로 나는 한양대 서울 캠퍼스 수시지원을 했다. 지원할 당시 만약에 떨어지면 내가 속한 학과를 어떻게든 바꿔보겠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탈락이었고 마음 먹은대로 에리카 컴퓨터공학과를 발전시켜보자는 마음으로 ICPC 준비 동아리를 만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알고리즘 문제 푸는거밖엔 없었고, 다른 학교에 다 있는 ICPC 준비 동아리가 이 학교에 없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알고리즘 문제 푸는게 서비스 개발하는 것보다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초기 동아리 큰 그림과 운영 방식

동아리를 만들면서 학교와 동아리의 성장 선순환 구조를 그렸다.
동아리에서 ICPC 상을 탄다 → 정보올림피아드 출신 신입생이 유입된다 → 그 친구들이 ICPC 상을 탄다 → 더 많은 정보올림피아드 출신 신입생이 유입된다 → ...
이에 따라 동아리의 목표는 ICPC 상을 타는 것으로 잡았다. 하지만 ICPC 진출조차 해보지 않았던 학교였기때문에 우선 대전 본선 진출(현재 서울 본선)이 가장 현실적인 목표였다.

동아리 커리큘럼은 정보올림피아드 학원에서 가져왔다.
C언어 문법 → 자료구조 → 알고리즘 → ...
문법부터 차근차근히 단계별 학습을 진행하고자 했다.

동아리 학습 구조는 다단계 멘토링으로 설정했다.
한 명의 멘토가 여러 명의 멘티를 키운다 → 성장한 멘티가 멘토가 되어 여러 명의 멘티를 키운다  → 다시 멘트들이 멘토가 되어 여러 명의 멘티를 키운다  → ...
예를 들어, 14학번인 내가 최소 2명 이상의 15학번 멘트를 키우고, 각 15학번 멘토가 최소 2명 이상의 16 학번 멘티를 키우면 점점 규모와 인력 구조 안정성이 갖춰질거라 생각했다.

다단계 멘토링으로 설정한 이유는 커리큘럼의 모든 단계를 나 혼자 책임 질 수 없기에 멘티들을 멘토로 만들어서 나의 역할을 분산시키고자 했다. 겸사겸사 멘토링을 하면서 자신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이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효과적인 학습 방법인 남에게 가르치기로 자료구조, 알고리즘을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SNS에서 얻은 정보가 있다면 바로 동아리 그룹 카톡방에 공유했다.
내가 대외활동으로 깨달은 점들이 있듯이 동아리원들도 이를 느꼈으면 했다.

그 이후.. 2015년

초기 만들 당시 4년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중에 지쳐서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 (이후에 바통을 받아서 살신성인 해주신분들 감사합니다)

내가 만든 동아리에 내가 잡아먹혀서 철창에 갇힌 느낌이었다..

내 역할을 나눌 멘티들 키워놨더니 다 군대에 가버렸다..

대외활동 정보를 공유해도 참가하는 사람은 없었다.. (수요 없는 공급)

혼자서만 생각하고 이래저래 움직여서 운영진이 모두 탈주했다..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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