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정 8월 26일 ·
천재를 이기는 법(feat. 이현세)-
지난주 백강현군과 과기고, 천재에 대한 이야기가 페북에 많았다. 사실, 페북 공간에도 천재, 수재들이 가득하다.
1. 초등 학교 시절, 나는 약간의 글쓰기 재능이 있었다. 독후감 경시대회나 글짓기 대회에 대표로 나가고 상도 받곤 했다. 중학교때는 문예반에 들어가서 글도 쓰고 토론도 했다. 재능이 있으니 문학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백일장 시상자들의 글이 게재된 교지를 읽게 되었다. 그때 1등 글을 읽었다. 한 선배의 것이었다. 그때 받은 엄청난 충격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내가 감히 표현할수 없는 문장들로 가득했다. 상상력 또한 기가막혔다. 나와 일년 차이 밖에 안되는데 그는 최소 10년은 앞서 보였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따라갈수 없겠다는 느낌이었다. 이에 좌절했다. 내가 쓴 글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그날 나는 문예반을 탈퇴하고 더 이상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
2. 박사과정에서 공부할때였다. 사실 중고등학교, 대학, 대학원 다닐때 나보다 성적이 좋은 친구들은 일부 있었지만 천재라고 여길 만한 친구는 없었다. 이에 누군가로 인해 좌절을 느낀적은 없었고 박사과정 연구도 그리 어렵지 않아서 여유롭게 했다.그런데 내게 좌절을 일으키게한 외국의 한 저명한 교수가 있었다. 그 분은 내가 연구하는 분야의 중요한 이론을 다 정리한 분이었다. 저명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데 공학은 심심해서 잠시 한번 손을 대본듯 했다.
그런데 이 분야 또한 크게 흔들어 놓았다. 이에 나는 마치 그분이 시간이 없거나 귀찮아서 손대지 않은 작은 빵부스러기나 가지고 노는 기분이었다. 이후 나는 다수 유수 학술지에도 논문을 내고 괜찮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학자''로서 경쟁력이 없겠다는 생각에 교수의 길을 포기했다.
3. 한참이 지난후 나는 이현세의 '천재를 이기는 법'이란 글을 읽었다(아래에 인용). 내가 그분의 글을 읽으면서 발견한 것은 포기하는 이유는 천재 때문도 나의 미약한 재능 때문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단지, 그 일에 대한 나의 열정과 사랑이 그 좌절을 이길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4. 전 인류 역사상 세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5명을 꼽으라고 해도 '다윈'은 그 안에 들어갈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다윈은 천재가 아니었다고 한다. 성공한 의사 아버지 아래 두 아들이 있었는데 다윈의 형이 천재였다고 한다. 다윈의 사촌동생 골튼 또한 천재였다. 다윈은 천재 형에게 치이는 동생이었을 뿐이다.
"늦깍이 천재들의 비밀"이라는 책을 보면 다윈은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범한 소년 이었다.이해력도 빠르지 않았다. 추상적인 사고를 따라가는 능력도 부족했다" 그는 그리스, 라틴어, 수학도 못했다. 그가 유일하게 좋아한것은 자연관찰과 생물수집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에게 "너는 스스로의 명예도 먹칠하고 우리 가족에도 망신거리다"라고 하며 겨우 의과대학에 보냈으나 다윈은 중퇴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다윈이 비글호탐사를 가는데에도 반대했다.다윈은 겨우 허락을 득하여 5년간 비글호 탐사를 한다. 이후 연구에 전념한다. 그는 우직하게 야생 동식물을 관찰하며 힘들고 단조로운 작업을 악착같이 해내었다. 따개비 조사 연구만 8년을 소요했다.
5. 도쿠시마대학이라는 유명치 않은 대학을 나와 중소기업 직장인으로 일하며 연구하다가 LED로 노벨상을 수상한 나카무라 슈지도 "끝까지 해내는 힘" 책을 보면 이런말을 했다. "10년 이상 아침부터 밤까지 용접을 했고 한달에 두세번은 폭발사고가 있었다. 실험에 실험을 거듭했다. 돌아가도 좋다. 서툴러도 좋다. 하나를 완성하는 일 그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최첨단 기술이라도 장인기술이라는 기술력이 필요하다. 한가지에 깊이 몰두해야 혁신이 일어난다. 우리 모두 아인슈타인은 될수 없지만 에디슨은 될수 있다고 생각한다."
6. '틀리지 않는 법'에서 저자인 수학교수 조던 엘런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의 입장에서 가장 안타까운것은 학생들이 '천재성 신앙'으로 인해 망가지는것이다. 많은 유망한 젊은 수학자들이 자기앞에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자신이 좋아하는 학문을 포기하는 모습을 매년 본다. 나도 예전에는 '노력'이란 모욕이라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똑똑하다고 말해줄수없을때 대신 말해주는 표현이라 여겼다. 그러나 '노력하는 능력', 즉, 하나의 문제에 관심과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또 고민하고 고민하며 겉으로 뚜렷한 발전의 신호가 보이지 않는데도 계속 전진하는 것은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것이 없이 수학을 할수 없다. 지금, 같이 일하는 대부분의 훌륭한 수학자는 어렸을때 수학경시대회에서 날렸던 사람들이 아니다"
7. 물론, 머리까지 뛰어나면 좋겠지만, 세상의 획을 긋는 성취는 대개 '머리'와 '효율'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우직한 '엉덩이'에서 나온다. 특정분야에 대한 강렬한 관심, 강한 흥미, 인내와 끈기에서 나온다.
8. 지속하는 힘과 노력하는 능력이 천재를 이긴다.
※다시읽기. 이현세의 '천재를 이기는 법'--------
살다 보면 꼭 한번은 재수가 좋든지 나쁘든지 천재를 만나게 된다. 대다수 우리들은 이 천재와 경쟁하다가 상처투성이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 주눅 들어 살든지, 아니면 자신의 취미나 재능과는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평생 못 가본 길에 대해서 동경하며 산다. 이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추월할 수 없는 천재를 만난다는 것은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다.
어릴 때 동네에서 그림에 대한 신동이 되고, 학교에서 만화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만화계에 입문해서 동료들을 만났을 때, 내 재능은 도토리 키 재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 중에 한두 명의 천재를 만났다. 나는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매일매일 날밤을 새우다시피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내 작업실은 이층 다락방이었고 매일 두부장수 아저씨의 종소리가 들리면 남들이 잠자는 시간만큼 나는 더 살았다는 만족감으로 그제서야 쌓인 원고지를 안고 잠들곤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한달 내내 술만 마시고 있다가도
며칠 휘갈겨서 가져오는 원고로 내 원고를 휴지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타고난 재능에 대해 원망도 해보고 이를 악물고 그 친구와 경쟁도 해 봤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상처만 커져갔다. 만화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고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점점 멀어졌다.
내게도 주눅이 들고 상처 입은 마음으로 현실과 타협해서 사회로 나가야 될 시간이 왔다. 그러나 나는 만화에 미쳐 있었다.
새 학기가 열리면 이 천재들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꼭 강의한다. 그것은 천재들과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천재를 만나면 먼저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상처 입을 필요가 없다.
작가의 길은 장거리 마라톤이지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천재들은 항상 먼저 가기 마련이고, 먼저 가서 뒤돌아보면 세상살이가 시시한 법이고, 그리고 어느 날 신의 벽을 만나 버린다.
인간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신의 벽을 만나면 천재는 좌절하고 방황하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리고 종내는 할 일을 잃고 멈춰서 버린다.
이처럼 천재를 먼저 보내놓고 10년이든 20년이든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 날 멈춰버린 그 천재를 추월해서 지나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산다는 것은 긴긴 세월에 걸쳐 하는 장거리 승부이지 절대로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만화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매일매일 스케치북을 들고 10장의 크로키를 하면 된다. 1년이면 3500장을 그리게 되고 10년이면 3만 5000장의 포즈를 잡게 된다. 그 속에는 온갖 인간의 자세와 패션과 풍경이 있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그려보지 않은 것은 거의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 좋은 글도 쓰고 싶다면,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메모를 하면 된다. 가장 정직하게 내면 세계를 파고 들어가는 설득력과 온갖 상상의 아이디어와 줄거리를 갖게 된다.
자신만이 경험한 가장 진솔한 이야기는 모두에게 감동을 준다. 만화가 이두호 선생은 항상 “만화는 엉덩이로 그린다.”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이 말은 언제나 내게 감동을 준다. 평생을 작가로서 생활하려면 지치지 않는 집중력과 지구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가끔 지구력 있는 천재도 있다. 그런 천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이고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런 천재들은 너무나 많은 즐거움과 혜택을 우리에게 주고 우리들의 갈 길을 제시해 준다. 나는 그런 천재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잠들기 전에 한 장의 그림만 더 그리면 된다. 해 지기 전에 딱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 어느 날 내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상이든, 산중턱이든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바라던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끝.